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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영화 남한산성은 조선시대 병자호란 사건을 소재로 다뤘으며 한국의 유명배우인 박해일, 이병헌, 김윤석이 출연한다. 청나라가 침범하고 남한산성에 포위된 조선의 왕은 첨예하게 대립되는 대신들의 주장 속에서 휘둘리기만 했다. 결국 47일 만에 성에서 나와 청나라에게 무릎 꿇은 치욕의 역사를 남겼다.

남한산성에 포위된 조선의 왕

조선 인조 14년에 명과 대치를 하던 청나라는 조선에게 군신관계를 요구하며 쳐들어온다. 청군의 압도적인 병력은 수도 한양을 순식간에 점령하고 임금과 신하들은 급히 강화도로 피신한다. 그러나 이미 강화도로 가는 피난길이 막히게 되고 그들은 남쪽에 있는 작은 성인 남한산성에 몸을 숨기기로 한다. 남한산성은 둘러싼 산새가 거칠며 동시에 바깥세계와 단절될 수밖에 없는 고립된 공간이었다. 청군은 이내 남한산성 주위를 포위했고 왕은 작은 성안에 완전히 갇히게 된다. 조정은 청나라에게 화친을 맺어야 한다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으로 나뉜다. 화친을 주장하는 이조판서 최명길과 반대하는 예조판서 김상헌 사이에서 갈등하던 임금은 최명길을 삼전도로 보내 청과 회유해 보라고 한다. 청군 기지에 간 최명길은 조선군과는 달리 넉넉하게 지내는 병사들을 마주한다. 청의 장군 용골대에게 조선의 상황을 설명해 보지만 일말의 동정도 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별다른 소득 없이 청의 황제 칸이 직접 조선에 온다는 소식만 전한 최명길에게 조정의 신하들은 거짓말이라며 그를 몰아세운다. 김상헌은 오랑캐와 화친할 수 없으니 지원군들을 소집해 청군과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금은 그 말에 흔들리고 결국 청나라와 맞서기로 결심한다.

첨예하게 대립되는 대신들의 주장

조정은 지원군들을 소집해 보지만 남한산성에 지원하는 병사들은 없었다. 이렇게 임금과 신하들이 두 손 놓고 지원군만 기다리고 있을 때 병사들은 낡은 무기를 새로이 정비해 다시 싸움에 나서고 크게 승리하게 된다. 그토록 작은 승리에 모두가 취해있을 때 최명길의 속은 더욱 타들어갔다. 게다가 삼전도에 청나라의 왕 칸의 부대가 몰려오고 있었고 정국은 점점 최약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들을 염탐하기 위해 영상대군은 최명길과 함께 용골대 장군을 찾아가고 그들의 군사력을 본 이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칸이 정말 조선에 온 것을 알게 된 임금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김유를 시켜 칸을 몰아내라고 명한다. 하지만 별다른 계획 없이 돌진한 조선군들은 또다시 패배하고 만다. 얼마 후 조정의 신하와 임금은 명나라 황제를 모시는 제사를 지내고 이 모습을 칸이 보게 된다. 그는 자신들을 외면하는 조선의 태도에 화가 나 보름날까지 성 밖으로 나와 자신에게 머리를 숙이라고 요구한다. 김상헌은 지원군이 거의 다 와가니 하루만 더 기다려보자고 말하고 최명길은 칸에게 답신을 전해야 한다며 둘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임금은 살기 위해 최명길의 손을 들어주고 칸에게 서신을 보내 항복하기로 한다. 김상헌은 다시 한번 지원군들을 소집한다는 격서를 보냈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다른 군영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약속한 보름이 되자 그는 어디에도 지원군이 나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47일 만에 치욕의 역사를 남기다

임금의 답신을 들고 온 최명길은 청에게 급히 가보지만 그들은 이미 남한산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지도층의 무능으로 인해 죄 없는 백성들이 다치는 것을 본 그는 다급히 칸에게 엎드려 왕의 서신을 전한다. 결국 47일 만에 곤룡포를 벗고 성을 나온 왕은 삼전도에 도착해 칸 앞에 굴복한다. 최명길은 칸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왕을 보며 큰 슬픔을 느낀다. 끝내 치욕스러운 왕과 조선을 거부한 김상헌은 관직을 버리고 떠난다. 수많은 백성을 잃고 무사히 왕좌만 보전받은 왕은 쓸쓸히 궁으로 돌아온다. 어리석은 논쟁과 내부의 폐단이 망가뜨린 47일간의 긴 여정이었다. 남한산성의 사건은 국가라는 거대 공동체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지도층의 잘못된 선택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끼치는지를 보여준다. 가장 큰 대립을 보여줬던 주화파 최명길과 척화파 김상헌이 뱉는 말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야 미래가 있다는 최명길의 말에는 그 주장 속에서 삶의 가치를 말한다. 이와 반대로 김상헌은 명예야 말로 다가오는 미래의 삶을 지탱할 수 있다며 온 백성에게 잊지 못할 치욕을 줄 수 없음을 주장했다. 이 사이에서 가장 무능했던 사람은 조선의 16대 왕이었다. 위기 상황 속에서 신하들의 말에 휘둘리기만 할 뿐 일관된 중심을 잡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 역사에 잊지 못할 굴욕을 남겼고 이는 지도자가 가지는 책임의 무게에 대해 예리한 시각을 가지게 한다.